평소 유튜브를 즐겨보는데, 어느 날 영국남자 채널에서 ‘남산의 부장들’ 영화 홍보를 한 적이 있었다.
썸네일에 걸려 있는 이병헌, 곽도원, 이희준 씨의 얼굴에 고민도 안 하고 본 영상이었는데, 유튜브에서 보리라 생각 못했던 배우들이라 더 관심이 갔었다.
<남산의 부장들(The Man Standing Next)>
개봉일: 2020년 01월 22일
장르: 드라마 (한국)
감독: 우민호
주연: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김소진
별점: ★★★★★
사실 이 영화는 믿고 보는 배우들의 총집합이니 만큼 어느 정도 보장이 된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어느 하나 그냥 끼워 넣은 배우가 없으니 실패하기도 힘들 것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
거기다 그 유명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사건에 관한 내용이니 역사나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흥미로워할 소재이고 말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영화 ‘내부자들’과 ‘마약왕’으로 유명해진 우민호 감독의 작품이다.
나는 ‘내부자들’은 보지 못하고 ‘마약왕’만 봤었는데, 영화를 보고 실망을 많이 했던 터라 처음에는 ‘남산의 부장들’이 재밌을까 살짝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남산의 부장들’은 너무 재밌었다.
아니, 재미라기보다는 정말 잘 만들었다는 느낌?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눈을 떼지 못하고 볼 영화였다.
‘남산의 부장들’은 앞서 말했다시피 ‘박정희 암살 사건’, ‘박정희 피격 사건’등으로 불리는 10.26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저녁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아지트인 궁정동 안가에서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김재규에게 살해당한 사건으로 18년 동안 이어져온 유신독재체제의 막이 내려간 사건이었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후 18년 동안 유신독재체제를 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가깝게는 불과 몇 년 전 대통령 직위에서 탄핵되어 지금은 죄수가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부인 탓이다.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아버지와 딸이 나란히 한 나라의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그러나 그 끝은 모두 비참했던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로열패밀리.
그리고 민주화를 이룩한 지금까지도 총 맞은 독재자를 그리워하며 그들을 추앙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집단까지 있는 집안이다.
10.26 사건의 중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었지만,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중심엔 제목처럼 당시 중앙 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있다.
유신독재정권의 수혜자이자 박정희의 측근이었던 그가 자신이 모시던 사람을 살해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철저히 ‘김재규’의 시점으로 영화를 그려간다.
사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워낙에 파란만장했던지라, 나는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배우는걸 정말 끔찍하게 여겼었다.
어찌나 사건도 많고 외울 것도 많았는지, 거의 손을 놓았던 탓에 내가 박정희에 대해 기억하는 거라고는 유신독재 밖에 없었다.
물론 나중에 좀 더 커서 박정희가 제 부하의 손에 죽었다는 것까지는 알게 되었지만, ‘김재규’라는 인물과 그 내막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김재규는 5.16 군사정변 당시 계엄군을 지휘했던 이로서 박정희 집권 당시 국회의원, 건설부장관을 거쳐 중앙 정보부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박정희의 옆에서 최고의 권세를 누리지만, 와이에이치(YH) 무역 여공 농성사건, 김영삼 의원직 박탈 사건, 부마 민주항쟁 등을 거치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고 결국 이른바 ’10.26사태’인 박정희 시해 사건을 행한다.
그 후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에 의해 체포되고 결국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 미수죄라는 죄명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후 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최고 권력자의 오른팔을 자처하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그를 처단하고 종국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 일련의 사건들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하니 영화로 만들기에도 아주 적격이지 않았나 싶다.
사실 김재규가 박정희를 피격한 것에 대해 당시 박정희의 경호실장이던 차지철과의 갈등으로 인한 우발적 살인이냐 혹은 미국의 사주를 받은 계획적 살인이냐를 두고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있다고 한다.
당시 언론은 김재규가 차지철에 대한 위기감이나 질투심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는데, 이는 살인의 동기로는 부족하고 김재규 본인의 주장과도 상충된다는 의견도 많다고 한다.
더불어 김재규에 대한 대법원 선고 4일 만에 사형이 집행된 것을 두고도 논란이 많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0.26 사건 실존 인물들의 각색을 거쳐 쓰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배우 이병헌 씨가 맡은 중앙 정보부장 ‘김규평’ 역은 ‘김재규’를, 이성민 씨가 맡은 ‘박통’ 역은 ‘박정희’를, 곽도원 씨가 맡은 전 중앙 정보부장 ‘박용각’ 역은 ‘김형욱’을, 이희준 씨가 맡은 경호실장 ‘곽상천’ 역은 ‘차지철’을 실존인물로 한다.
‘남산의 부장들’의 줄거리는 이미 알고 있다시피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두어 각색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탓에 사실 특별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와 한 장면 한 장면 극의 몰입을 더하는 연출만으로 완성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이미 캐스팅 만으로 완성된 영화라 할 만큼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고는 얘기를 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데도 마지막까지 긴장감으로 나를 떨게 한 이병헌 씨의 연기는 진짜 예술이었고, 나는 잘 몰랐지만 같이 영화를 본 엄마는 이성민 씨에게 그 당시의 박정희와 정말 흡사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다.
물론 곽도원 씨와 이희준 씨의 연기도 말할 것 없었고 말이다.
영화의 색감, 구도, 연출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다.
장소의 변화가 없어 지루했다는 평도 있지만 글쎄…… 장소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이만큼 연출을 한 게 대단한 게 아닐까 싶다.
한 기사에서 ‘김재규’에 대한 젊은 세대의 재평가라는 타이틀을 보았다.
그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 본 이번 영화 속 ‘김재규’에 대해 적어도 그 당시 언론의 입장과 같은 이유로 박정희를 죽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박정희를 죽였기에 부마항쟁의 피해도 최소화될 수 있었고, 유신 독제 채 제도 막을 내렸으니 그것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의 손으로 독재자를 처단했다고는 하나, 또 반대로 유신이 탄생하는데 일조하고 그 권력을 누린 사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를 그렇게 높게 평가해 주고 싶지는 않다.
만약 그의 이해타산과 박정희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면, 그가 총을 들 이유도 없었을 것 같으니 말이다.
또한 그의 탓은 아니지만, 전두환 정권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된 걸 생각한다면야.
그를 민주화의 투사 같은 걸로 포장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진짜 피 흘리고 죽어간 민주투사들은 따로 있지 않은가.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영화를 봐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역사에서도 이런 좋은 영화에서도 여성의 존재는 없었다는 점이랄까.
주인공들의 엑스트라 혹은 약간의 매개체 그 이상이 될 수 없단 사실에 좀 씁쓸했던 것 같다.
뭐, 그래도 훌륭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 역사에 여자가 없었던걸 어쩌겠나. 그래도 앞으로는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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