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살인’, 더 넓은 의미로 ‘암수 범죄’라고 불리는 범죄가 있다.
범죄는 실제로 발생했으나,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어도 용의자 신원 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적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것이 바로 ‘암수 범죄’다.
영어로는 ‘Hidden Crime’. 말 그대로 숨겨진 범죄인 것인데, 주로 성범죄와 같이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신고하기를 꺼리거나 마약 범죄와 같이 범죄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한 범죄에 많다고 한다.
오늘 리뷰할 영화 제목이기도 한 ‘암수살인’ 또한 ‘암수 범죄’의 개념과 같이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한 살인 사건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범죄는 범죄자의 입장에서는 ‘완전범죄’라고 부를만할 것이고, 이 사건들이 미제 사건과 다른 점이라면 피해자가 특정되었느냐 아니냐가 다르다는 것이다.
<암수살인 (Dark Figure of Crime)>
개봉일: 2018년 10월 03일
장르: 범죄 (한국)
감독: 김태균
주연: 김윤석, 주지훈
별점: ★★★☆☆
영화 ‘암수살인’은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영화다.
그래서 리뷰에 앞서 꼭 짚고 넘어갈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영화 제작에 앞서 해당 사건의 실제 피해자 유가족의 동의 없이 영화 촬영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보통 실제 사건을 영화로 각색할 때는 2차 가해를 우려해 해당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사전 동의를 구하고 협의를 한 다음 영화제작을 하는 것이 관례이자 기본인데, 영화 ‘암수살인’ 제작사는 해당 살인사건 유족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영화 제작을 진행한 것이다.
그 때문에 해당 사건의 피해자 동생이 영화 ‘암수살인’의 상영금지를 신청한 바가 있다.
그래도 결국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내고 일부 장면을 통편집하는 등 상영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소 싸늘했다.
이미 전적이 있는 제작자의 작품이었기 때문인데,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자 제작사 측은 공식 입장과 함께 사과문을 게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련의 사건으로 영화는 실검에 오르는 등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어찌 보면 노이즈 마케팅이 된 셈이다.
영화 ‘암수살인’이 다루는 이 실화는 앞서 2012년에 ‘그것이 알고 싶다’ 869회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
실제 당시 이두홍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김정수 형사와 피해자 유족이 직접 출연하는 등 당시의 상황 재현을 잘해주고 있다고 하니, 이 사건에 대해 궁금하다면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 참고로 그것이 알고 싶다 869회의 내용과 영화의 내용이 거의 동일해 영화를 본 뒤 해당 회차를 보는 걸 추천한다.
영화 ‘암수살인’의 배경은 2010년 부산.
살인마 강태오(주지훈)와 형사 김형민(김윤석)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강태오가 살인사건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후 김형민에게 자신이 살해한 사람이 더 있다는 편지를 보냄으로써 본격적으로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강태오가 스스로 밝힌 살인사건은 총 7개. 김형민은 수수께끼 같은 살인범의 힌트에 따라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강태오의 범죄를 파헤치기 시작하지만, 진실과 거짓이 섞인 강태오의 진술들에 난항을 겪기도 한다.
자신의 재판을 뒤집고 감옥에서 석방되기 위해 형사 김형민을 이용하는 강태오와 그가 자신을 이용하는 걸 알면서도 억울한 피해자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치열한 심리전을 벌이는 김형민의 모습들이 영화 ‘암수살인’의 줄거리라 할 수 있겠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주요 장면들은 대부분 범죄자 강태오와 형사 김형민의 심리 싸움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영화의 연출 자체도 여타 다른 범죄물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는데, 다른 범죄물과 영화 ‘암수살인’의 큰 차이가 있다면 범죄의 추적 방식이 정 반대라는 것이다.
보통의 범죄물이 피해자가 발생하고 형사가 범인을 추적하는 형식이라면, 영화 ‘암수살인’은 암수 범죄의 특성상 범인이 아닌 피해자를 추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흔히 스릴러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의 포인트도 여타 범죄물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범죄자를 추적하는 주인공이 범죄자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물리적 긴장감이 큰데, 영화 ‘암수살인’에서는 주인공이 물리적 위협을 받을 위험성이 거의 없어서 극 중 긴장감은 거의 강태오와 김형민이 마주할 때, 강태오가 법정에서 유리해질 때와 같이 심리적 압박을 받을 때 형성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심리전이 주를 이루는 범죄물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권력형 범죄, 금융 범죄와 같은 장르였지 살인 범죄를 다루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범인과 대면하는 심리전은 드문 편이기에 이례적이고 독특하게 느껴졌다.
영화 ‘암수살인’의 주연으로는 범인 강태오 역에는 배우 ‘주지훈’이, 형사 김형민 역으로는 배우 ‘김윤석’이 맡게 되었다.
두 배우 다 각자의 배역에 잘 어울리는 편이었고, 상대적으로 편차가 큰 주지훈의 연기를 안정적인 김윤석이 잡아주는 느낌이 들어 밸런스가 괜찮았던 것 같다.
사실 생각해보면 주지훈의 연기가 썩 훌륭했던 것은 아니다.
사투리도 상당히 어색한 느낌이었고,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워낙 살인범을 소름 끼칠 만큼 훌륭하게 소화해낸 배우들이 많다 보니 그 섬세함에 있어서는 역시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달까.
그래도 주지훈 데뷔 때 연기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생각한다. 최근 작품인 ‘킹덤’에서도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말이다.
솔직히 영화 ‘암수살인’을 보는 내내 우울감을 감출 수 없었다.
상당히 잔혹한 범행 방식에, 살인에 별다른 동기가 없었다는 것에, 이렇게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이 또 있으리라는 것에, 무엇보다 이 모든 게 다 실화라는 사실에 말이다.
영화 속 강태오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성’과 ‘합리성’을 따질 수가 없다. 애초에 그걸 따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테다. 그래서 이 사건 피해자들의 죽음이 더 안타깝고 허무하다.
영화 ‘암수살인’의 감독인 김태균 감독은 2012년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처음 이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짐작건데 머리 좋은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숨겨진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형사의 이야기를 꽤 드라마틱하게 느꼈을 거라 생각된다.
이런 범죄 실화는 진짜기 때문에 관객에게 더 와닿고 어찌 보면 자극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
암수살인 제작 당시 피해자 유족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점은 정말 큰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정말 순수하고 신중하게 이 사건에 접근했다면 이런 기본적인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감독이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건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고, 아마 그랬기에 사람들의 분노를 사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불편했고 아쉬웠던 점 한 가지를 꼽고 싶다.
바로 범죄자 강태오의 과거 행적, 불우한 가정사 등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범행을 어느 정도 합리화시킬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이슈가 된 ‘n번방’ 사건의 조주빈에게 악마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과 같이 전형적으로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 말이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이런 점은 지양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세상에는 불행하고 불우한 환경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런 환경 속에 놓여있다고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불우한 과거를 더는 범죄의 동기로 납득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어려운 상황에서도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 대한 모욕이다.
이유가 없는 살인은,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범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변명의 여지를 주어서도 안 된다.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 그 이상의 의미부여는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가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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